가수 쟈니리는 1960년대에 큰 인기를 끌던 대한민국의 가수입니다. 자냐린은 만주국 지린성 지린 출생이며 본명은 이영길인데요. 중화민국 장쑤 성 상하이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조선 땅에 귀국하여 한국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쟈니리는 한국전이 발발하자 경상남도 부산으로 피난을 갔고, 1958년 상경하여 1959년 극단 쇼보트 단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1년에 미 8군 무대에서 가수로 활동을 했지요. 쟈니리 사망 루머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현재도 건강하게 종종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쟈니리 프로필

쟈니리 나이는 1938년 8월 29일생인데요. 90세를 넘긴 원로 가수이지요. 쟈니리는 세번의 이혼과 네번의 결혼을 한 이력이 있는데요. 그가 이렇게 결혼과 이혼을 많이 하게 된 것은 바로 <자유> 때문이었습니다.





쟈니리 부인(아내) 결혼과 이혼

쟈니리는 톱스타가 된 이후 세 명의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됩니다. 쟈니리 본인이 이혼 사실과 이유를 솔직하게 방송에서 언급을 했었는데요.


쟈니리 첫번째 전부인은 <대학을 다니던 여자였다. 자취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애가 생겼다. 결혼생활은 20년 정도 했다>



<어릴 때 너무 고생해서 톱스타가 되고 수입도 좋아지니 마음껏 돈을 쓰고 싶었다. 아내의 간섭이 불편해지자 가정불화가 일어났다.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고 나니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번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2~3년 만에 이혼을 해싿. 두번째 아내와 이혼한 이유 역시 자유 때문이다>


<세번째 부인은 매사에 엄격했다. 재미있는 내가 재미가 없게 되더라>



<네번째 부인은 결혼을 안 된다 싶어 누르고 살고 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는데요. 쟈니리는 네번째 부인 윤삼숙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쟈니리의 건강을 보살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날 답답함을 느껴서 병원에 갔는데 식도암 말기라더라. 그때는 미국시민권이 있어서 의료보험 적용도 안됐다. 그때 지금의 부인이 간호를 해줬다. 네번째 부인 윤삼숙을 만난 것은 운명이다. 내가 살려고 만난 것이다>



<아내가 저당을 잡혀서 내 병을 치료해줬다> 쟈니리의 곂에서 그를 간병하고 보살피는 아내는 <고맙다는 소리도 듣기 싫다. 사람들은 내가 살렸다고 하는데 내가 뭘 살린 거냐. 의사가 살린 거고, 본인이 살겠다는 의지가 있어서 산 것이다>라고 덤덤하게 말했지요.



쟈리니 현재의 부인 윤삼숙은 <친구를 통해 남편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남편이 혼자 생활을 했는데 내가 음식을 만들어서 자주 나눠줬다. 그러다보니 교제를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쟈니리의 어떤 면이 좋았냐는 질문에 <한 번은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빨래, 청소와는 거리가 먼 보통 한국남자들과 달리 남편의 집은 매우 깨끗했다>



<이불속에서 향수 냄새가 나고 화장실도 먼지하나 없이 깨끗했다. 너무 잘 정돈되어 있어서 너무 마음에 들었다. 쟈니리와 결혼 당시 내 결정에 확신이 있었다>



쟈니리는 이처럼 네번의 결혼을 했지만, 아내에 대한 진실성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여자를 만나고 나니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이혼이유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쟈니리가 자신의 자유가 아닌 결혼 생활만 좀 더 안정적으로 했다면 대중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텐데라는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쟈니리를 대표하는 노래로는 전인권, 김장훈, 크라잉넛, 체리필터 등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사노라면>이라는 곡인데요. 이 곡은 지난 1967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돼 당시 큰 인기를 누리지 못했지만, 훗날 명곡임을 알아채고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불려지고 있습니다. 쟈니리가 식도암을 잘 극복하길 바라며, 건강하게 대중들에게 오랫동안 노래를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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