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배우 정동환은 다작 배우 중의 한 명으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을 했습니다. 정동환은 회장님의 역할 또는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로 많이 출연을 하고 있는데요. 영화, 드라마, 연극까지 다양한 무대를 통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동환 프로필

정동환 나이는 1949년 8월 5일생으로 고향은 전북 김제시입니다. 정동환 학력은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이며 데뷔는 1969년 연극 <낯선 사나이>로 데뷔를 했지요.



정동환은 실질적으로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연극배우로 활동을 했고 극단 동랑레퍼토리에서 활동을 합니다. 연극 햄릿, 맥베스 등 수많은 연극 무대에서 활동을 했고, 1982년 영화 <만추>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들의 주목을 받게 되지요.



정동환 국가 유공자

정동환은 대학교를 다니던 중에 군대에 입대를 합니다. 정동환은 국가유공자인데요. 월남으로 자원 파병을 한 것입니다.


<군대에서 돈이나 벌어오자 싶어서 월남행을 자원했다. 보통 월남은 12개월밖에 있을 수 없는데 마친 내가 갔을 때가 패망 직전이어서 18개월이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제대를 넘겨서까지 있다가 1973년에 돌아왔다. 월남에서 나는 땅 파고 지뢰 제거하고 다리를 놨어요. 야전 공병이었다>



<월남전 참전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대학교 학비를 대기 위해서였다. 일종의 호기심도 있었고 이거 아니면 언제 해외를 가보나라는 생각도 있었다>


<제가 살면서 몇 가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월남전 참전으로 저는 국가 유공자가 됐다. 나라에서 예우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정동환은 월남에서 돈을 벌어왔지만 가난은 그가 연극계로 돌아가도록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973년 동아방송 성우 6기생으로 입사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동환은 직장에 몸 담은 상태에서 연극을 계속하는 것이 어려웠고, 회사 다니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 두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에 가서 막노동을 하게 되지요. <일본에 가서 계절노동 같은 것을 했다. 파인애플 따는 일도 하고 공장 잡부 일도 했다. 밀항은 아니고 시험 보고 정식 비자를 받아 갔다. 지금 동남아 노동자들이 우리나와서 한 달 일하면 일년치 월급을 벌어간다고 하지 않나? 그것하고 마찬가지였다. 일본 가서 한철 일하고 돌아오면 수입이 괜찮았다>


정동환은 연극배우로 성공하기 전까지 정말 많은 경험을 했던 것 같네요. 연극배우로 인지도를 쌓은 뒤에도 여전히 생활이 되지 않아서 거기에 굴하지 않고 막노동과 같은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지요.


그러다 정동환은 1981년 드라마 <약속의 땅>, 1982년 영화 <만추> 등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며 브라운관에 데뷔를 하게 됩니다.



정동환 부인(아내) 정윤선

정동환은 한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경험했습니다. 정동환 전부인과는 1982년 이혼을 했는데요. 가난한 삶 때문에 정동환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전처와의 사이에 딸 2명이 있었는데, 모두 어머니에게 맡기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정동환 둘째 딸 정하늬는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딸인데 1980년생으로 연극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요.



정동환은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인 1985년 9월 친구의 소개로 가수 정윤선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정윤선은 정동환의 부인이 되지요.


<정윤선이 그때 미국에 공연이 있었다. LA에서 후배가 있었는데 만나게 되었다>


정윤선 나이는 1958년생으로 정동환보다 9살 연하입니다. 정윤선은 1976년 MBC 탤런트 9기로 데뷔를 했다가 1978년 <잊지는 못할거야>로 가수로 데뷔를 했고, 엽서, 아들, 오해 등과 같은 히트곡을 남기게 됩니다.



정윤선은 9살 연하이면서도 예쁜 외모, 가수로서 남성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는데, 정동환과의 결혼 당시 많은 남성들의 탄식을 사기도 했지요.


정동환은 재혼이었고, 정윤선은 초혼이었는데요. 두 사람은 1986년 2월 약혼을 했고 같은해인 9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이후 정동환 정윤선 부부는 아들 정우철을 낳게 되지요.



정윤선이 대단한 이유는 전처의 자식을 잘 키웠고, 이후 아들을 낳아서 잘 키웠다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정동환은 항상 아내 정윤선에게 마음의 빚과 그것을 갚기 위한 애정,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정동환은 현재에도 다양한 작품을 통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아내 정윤선과 자연과 함께 전원생활을 하면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집사람하고 왜 우리는 아무것도 없나라고 이야기 한다. 그것 때문에 사는 게 불편하지는 않아서 후회하지 않는다. 제 전성기 때 주인공을 맡는다고 해서 특별한 대우가 없었다. 그때 등급이 정해져 있었다. 주연 수당 조차 없었다. 어떤 경우는 출연료를 받아서 생계조차 유지가 안됐다. 그런 생활이 10여 년 지나갔다. 그때 매일 일하지 않으면 굶었을 때였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그걸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정동환은 전원주택 생활을 하면서 연기 생활을 계속 했지만 뜻밖에도 공황장애를 걸리며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그때에도 정동환 아내 정윤선이 옆에서 큰 힘이 되어주며, 공황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지요.


정동환은 이처럼 수많은 경험을 통하여 인생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동환은 건강할 때까지 더 연기 활동, 연극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요. 정동환이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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